베토벤의 합창 환상곡
연주회 대미 장식 위해 쓴 곡
피아노 즉흥곡.칸타타 등
유례없는 파격적인 형태
이 날에는 ‘5번 운명 교향곡’, ‘6번 전원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4번’, 콘체르트 아리아인 ‘아, 페르피도 (Ah, Perfido)’, ‘장엄미사곡 다장조 중 글로리아, 상투스, 베네딕투스’, ‘피아노 즉흥곡’ 그리고 합창 환상곡(Choral Fantasy)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이 연주회는 지금으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무려 4시간이나 걸렸.
합창 환상곡은이날 연주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하여 베토벤이 연주를 얼마 앞두지 않고 갑작스럽게 쓴 곡이다. 피아노가 처음에 혼자 치는 부분은 미처 악보에 옮기지 못해서 베토벤이 당일에 즉흥적으로 연주했고, 오케스트라와 충분히 연습 시간을 갖지 못했던 터에 멈춰서 다시 시작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혹자는 합창 환상곡을 포유류지만 알을 낳는 오리와 너구리의 중간인 오리너구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합창 환상곡은 피아노 협연인 듯 오케스트라 앞에 피아노 독주자가 앉아있는데 뒤에 솔리스트와 합창이 서있는 모습은 칸타타나 오라토리오의 모습과 같다. 보이는 바와 같이 합창 환상곡은 피아노 즉흥곡, 피아노 협주곡, 칸타타가 융합된 유례에 없는 파격적인 형태의 곡이었다.
합창 환상곡이 발표되고 14년 후 베토벤은 1823년에 클래식 역사상 교향곡에 합창을 처음으로 넣은 ‘9번 교향곡’으로 다시금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사실 베토벤이 이 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한 것은 30년 전이었으므로 합창 판타지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이런 비슷한 형태의 새로운 장르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9번 교향곡에 쓴 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와 비슷한 내용의 가사, 부분적으로 비슷한 멜로디와 전개가 합창 판타지에도 등장한다.
베토벤에게 합창 판타지는 아마도 9번 교곡을 위한 초석이나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현대인의 귀는 바로크 이전의 음악부터 고전, 낭만, 인상주의, 근대를 거쳐 현대까지 오랜 역사의 음악을 들었다. 진보한 음악을 알고 듣고 있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귀는 안타깝게도 베토벤 시대에 익숙했던 것과 새로운 것에 반응할 수 없는 귀가 되었다. 당시에 충격적으로 들렸던 부분이 더 이상 현대인에게는 혁명적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물론 베토벤 시대 사람들의 귀처럼 반응하지 않을지라도 베토벤의 음악은 매우 위대하고 그 당시 그가 시도했던 것들이 대단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감탄한다. 하지만 가끔은 그 시대 사람들이 느꼈을 쇼크를 온전히 느끼거나 초연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작곡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립 박수로 초연 성공했음을 알리기도 하고, 로 이해를 못하겠다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라도 말이다. 베토벤도 베토벤이지만 4시간 동안 그의 음악을 들어주는 이들도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며 한 해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가들에게 귀를 기울였는지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2014.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