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1901&1905
완전히 실패한 초연 공연
4년 후 대적으로 수정해
큰 호평 속 대성공 협주곡
핀란드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 소나타와 많은 바이올린 소품들을 남겼고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세레나데나 유모레스크 등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을 쓰긴 했지만 정확하게 ‘협주곡’의 형태로 쓴 곡은 라단조 op.47이 유일하다.
1901년 시벨리우스는 독일에서 이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약속한 당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버머스터에게 헌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재정적인 이유로 독일 연주가 무산되고 헬싱키에서 날짜를 앞당겨 연주해야 했는데 불행히도 버머스터는 그 때 헬싱키로 갈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래서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이자 헬싱키 음악원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노바체크에게 연주를 부탁하여 시벨리우스 본인의 지휘와 헬싱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됐다. 그러나 연주를 준비하기에 시간이 촉박한데다가 시벨리우스의 협주곡은 당시 기교로는 소화하기 힘든 난이도였기 때문에 노바체크의 연주는 좋지 못했고 시벨리우스의 지인들마저 혹평을 할 만큼 초연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시벨리우스는 이 협주곡의 출판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4년 후, 비엔나 유학시절 심취했던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고 자신의 협주곡에서 난해한 기교를 빼고 구조를 탄탄하게 만들기로 결심하고 특히 1악장을 대대적으로 고쳤다. 초연 버전은 오케스트레이션이 훨씬 무겁고 어두운 색채가 진하며 바이올린의 카덴짜(연주자의 기교를 발휘시키기 위한 화려하고 즉흥적인 부분, 오케스트라가 쉬고 솔리스트 혼자 연주한다)가 두 군데나 있고 전체적으로 훨씬 다. 개정판은 시 없다고 생각한 부분들을 과감하게 삭제하고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오케스트라 파트도 상당부분 수정했다.
1905년 베를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헤어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로 개정판 첫 선을 보이게 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시벨리우스는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초연 실패에 대한 염려와 심리적인 부담이 작용했을 수도. 그러나 개정판은 큰 호평을 받으며 연주는 대성공을 했고 20세기에 탄생한 위대한 바이올린 협주곡이 됐다.
늘 이슈를 몰고 다니는 현존하는 그리스 바이올리니스트 카바코스는 시벨리우스의 초판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초판본이 출판되지 않았던 터라 악보를 구할 수 없자 시벨리우스의 초판본 자필 악보를 구할 수 없느냐고 직접 시벨리우스 가문 연락했다. 시벨리우스가 판 원지 않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카바코스의 이름을 믿고 허락해주었다. 그리하여 1991년 세계 최초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오리지널 버전이 카바코스에 의해서 녹음됐다. 초고판과 개정판을 비교해보면서 듣는 것도 큰 즐거움일 듯하다.
2014.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