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도 여백의 미
배음을 만들 공간 생기면
모든악기 연주 소리보다
풍성한 소리 얻을 수 있어
어떠한 음악인지 들어보지 않고 악보를 먼저 손에 넣으면 음악가들은 본능적으로 ‘그림’을 훑는다. 그냥 말 그대로 악보를 쭉 넘겨보면서 까만지 (음표가 많다는 것은 고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말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 아니면 하얀지(음표의 길이가 길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느리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얘기일 수 있다)부터 체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필자가 악보를 보는 방법이 수평적(‘무엇을 하는지’)에서 수직적(‘어떻게 하는지’)로 바뀌었다. 지휘자가 보는 악보는 목관, 금관, 타악기, 현악기 순서로 한 페이지 수직 배열이 목관과 현악기만 나오는 부분이면 금관악기 부분이 빠져 가운데가 뻥 뚫려있는 그림이고, 한 악기가 멜로디를 하고 다른 악기가 이어받는 대화의 흔적도 볼 수 있고, 모두가 복잡한 리듬으로 얽힌 새까만 페이지도 있고, 한 악기, 한 악기씩 사라져 나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조용한 페이지도 있다.
악보를 보면 생각했던 것 보다 꽤 많은 곳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화려한 색깔의 물감들을 많이 사용한다고 해서 잘 그린 그림이 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늘어놓는다고 해서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글이 될 수 없듯이 악기가 모두 다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것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아니다.(물론 그런 효과를 원했을 경우 모든 악기가 다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을 음악용어로 Tutti, 전체합주라는 뜻이다)
과학적로 접근해도 그렇다. 든 악기에는 배음(실제로 내는 음에 대해서 진동이 생겨 실제로 낸 음보다 훨씬 많은 음들이 쌓여서 난다)이 있다. 배음을 만들 공간이 생기면 모든 악기가 다 연주하는 것보다도 더 풍성한 소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 차이코프스키나 림스키 코르사코프 같은 작곡가들이다. 그들의 곡을 들었을 때 선명한 멜로디가 머리에 남는 것은 멜로디를 잘 쓴 것이 이유의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적절한 악기 편성으로 울림을 줄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너무 많은 여백은 ‘왜’라는 질문을 만들어 낸다. 비유하자면 왜 이 멜로디를 노란색 형광펜으로 강조하지 않고 혹은 빨간색 볼펜으로 별표를 하지 않고 그냥 노트 한 페이지에 연필로 한 문장만 써놓았는지.
가끔은 물음표에 대한 정확한 답이 안 나올 때 있지만 비우라는 이유는 그것을 울 있는 더 큰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공간에는 울림이 있을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은 저마다 다른 감동으로 메워질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2014.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