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에서 그대를 읽었소
덜렁대는 성격 드보르작
악필 베토벤ㆍ슈베르트
꼼꼼한 말러ㆍ볼프ㆍ푸치니
요즘에는 컴퓨터로 악보를 입력하고, 한 곡에서 앞부분과 같이 반복하는 부분이 나올 때 Ctrl+C, Ctrl+V (복사하기, 붙여넣기)를 하면 틀릴 일도 없고 간편한 일인데 예전에는 악보를 손으로 일일이 그리다보니 아무래도 틀린 부분이 생기기 십상이었다.
악보를 그리는 부분에 있어서 덜렁대는 성격으로 대표적인 사람이 드르작이. 드보르작은 반복되는 구간이 나와도 앞에 쓴 것과 비교하지 않고 대충 머리에 있는 대로 악상기호 같은 것을 적어 넣었다. 그래서 분명 같은 멜로디에 같은 반주인데도 다른 악상이거나, 다른 악기들은 다 fp(강하게 그리고 이어서 약하게)인데 한 악기에만 sfz(그 음만을 강하게)를 적어놓은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베토벤은 후대에 그의 글씨를 알아보지 못해 곡 제목이 다르게 출판될 정도로 지독한 악필이었고, 슈베르트의 악보에서는 특히 데크레센도(점점 약하게 )와 악센트(그 음만 특히 세게 >)의 구분이 어려웠다. 그래서 예전 인쇄본에는 데크레센도로 나왔고, 슈베르트를 다시 연구하여 악센트를 의도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들은 최근 악보에 악센트로 바뀌었다. ‘점점 약하게’와 ‘그 음만 특히 세게’는 매우 상반되는 시라서 새로운 버전의 악보가 나온 후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연주가가 자신의 의도를 행여 잘못 이해하거나 왜곡해서 표현을 할까봐 악보에 디테일하게 지시사항을 적는 꼼꼼한 작곡가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말러와 볼프다. 단락이 넘어가는 부분이면 어김없이 빠르기, 분위기, 캐릭까지 아주 상세하게 어. 말러는 작곡가임과 동시에 뛰어난 지휘자였기 때문에 지휘자가 어떤 부분에서 어떤 오류를 범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아다지오, 느리게, 하지만 느려지지 말고’ 라든가 ‘축제분위기로, 하지만 너무 빠르지 않게’ 등의 지시를 보면 말러가 자신의 의도가 흐려 질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알 수 있다.
푸치니도 섬세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 그는 오페라 대본작가가 쓴 대본을 매우 철저하게 분석했고 악보에 한 구절마다 지문을 써넣었다. 오페라에서 쓰이는 소도구도 음악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해서 공연에 사용되는 소품 하나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였다고.
잘 찍은 사진을 보면 그 사진에 찍힌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은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 마찬가지로 음악 속에도 작곡가들이 그대로 묻어 있다. 음악 자체를 듣고 즐기는 것도 지 음 만든 사람의 마음이, 성격이, 삶이, 나아가 그 사람이 살던 시대의 흐름까지 느낄 수 있다면, 알아진다면 혹은 알고 싶은 호기심이 생긴다면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있어서 더한 기쁨이 있을까.
2013. 11. 13